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 이글스/역사 (문단 편집) === 2003 시즌 === [[이광환]] 감독의 사임 이후, 빙그레 선수 출신인 [[유승안]]이 2003년 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의 새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 전체를 추스르게 된다.[* 유승안은 팀 창단부터 함께해 왔던 프랜차이즈 스타기도 하거니와, 1999년 감독대행으로 연승을 하는 등의 행적으로 한화 팬들 및 팀 내부에서의 기대가 매우 컸다. 이광환 감독이 02시즌 막판 태업에 가까운 운영을 선보인 것도 다음 시즌 감독은 자기가 아닌 유승안이 될 걸 알고 그랬다는 썰이 있고, 이희수 감독이 우승을 하고도 재계약하지 않은 것도 유승안을 밀어주려는 프런트와의 정치싸움이 생겨서라고 한다. 비록 썰이지만, 이런 말이 돌았다는 게 당시 구단 내외부에서의 유승안의 입지와 기대감을 말해준다.] 문동환 재활, 이범호의 레벨업, 간판타자로 성장한 김태균 등 김인식 초창기 잘 나가던 한화의 기초는 유승안 감독 때 마련되었다. 반면 고졸신인이던 송창식을 혹사시키고, 송지만을 현대로 조공하다시피 트레이드한 것 등의 그림자도 있어서 과대평가란 시각도 있다. 유승안 감독 부임 첫 해인 2003년에는 스프링캠프를 따뜻한 해외가 아닌 [[제주특별자치도]]로 가는 바람에 시즌 초부터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는 등 악재가 터졌다. 대표적으로 이 해에는 롯데와 두산이 시즌 초반부터 신나게 병림픽을 벌였는데, 두산의 개막 8연패와 롯데의 개막 12연패가 전부 한화전에서 끊어졌다. 두 경기에서 [[송진우(야구)|송진우]]가 전부 패전투수가 된 것 덤. 시즌 내내 5할보다 약간 밑에서 시즌을 보내 줄곧 6위에 머물고 있었고, 9월 11일에는 51승4무61패로 승패마진 -10까지 내려가며 사실상 가을야구는 일찌감치 실패하는듯 했다. 그러다가 시즌 최후반에 7연승과 5연승으로 14경기에서 12승1무1패를 기록하는 기적같은 연승가도를 달리며 전반기에 선두를 달리다가 후반기에 급추락한 SK와 막판까지 4위 경쟁을 하기도 했다.[* 2018년 [[롯데 자이언츠]]의 행보와 매우 유사하다.] 그리고 기어이 SK를 5위로 밀어내고 시즌 종료까지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잠시나마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.[* 만약 이해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면 1998년 OB의 기적이 한화에서 재현될 뻔했다.] 하지만 [[두산 베어스]]한테 고춧가루를 얻어맞으며 4위 자리는 2일 천하가 되었고, 4위 경쟁자 [[SK 와이번스]]와의 ~~사실상의 와일드카드 결정전~~ 단두대매치에서도 패하면서 5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치게 된다.[* 설령 승률제였더라도 한화와 SK가 9승 1무 9패로 상대전적이 동률이었지만 SK가 한화를 마지막 맞대결에서 이긴 와중에 맞대결에서 SK가 98점, 한화가 96점으로 SK가 한화에게 득점이 2점이나 앞서 버렸기 때문에 득실차이로 탈락이었다.] 시즌 최종전도 패배해서 63승 65패로 5할 승률에 1승이 모자랐던 것도 아쉬웠던 부분. 하지만 스토브리그에 들려온 소식은은 전력 누수였다. 시즌 종료 직후 2003년 에이스였던 [[이상목]]이 FA를 통해 롯데로 이적했다. 그리고 이 해 부진했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[[송지만]]을 [[현대 유니콘스]]에 내주고 투수진 보강 차원에서 [[권준헌]]을 영입하는데, 이는 구단 역사뿐만 아니라 '''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를 논할 때 한번씩 회자되는 트레이드이다.'''[* 원래 연봉문제로 송지만과 팀 사이가 험악했다고도 하고, 짠돌이인 구단 특성상 이영우와 FA 중 한 명만 잡기 위해 일부러 내보냈다는 설도 있고, 송지만의 선수협 활동으로 인해 구단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